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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브로드웨이 42번가 후기 (쇼뮤지컬, 최유정, 탭댄스)

by 동글이세상 2026. 3. 31.

브로드웨이42번가 뮤지컬 후기
뮤지컬 브로드웨이 42번가 후기

 

 

솔직히 저는 젠더프리 캐스팅이라는 말만 듣고 이번 브로드웨이 42번가를 예매하려고 했습니다. 박칼린 배우의 줄리안 마쉬를 보고 싶었는데, 막상 예매 가능한 날짜를 확인해 보니 박건형 배우로 캐스팅 회차만 남아있더라고요. 일반적으로 젠더프리 캐스팅이 화제가 된 작품은 그 배우를 봐야 제맛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은데, 제 경험상 이번만큼은 조금 다릅니다. 박건형 + 최유정 조합으로 본 공연이었지만, 쇼뮤지컬의 정석이라는 표현 외에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을 만큼 압도적인 무대였거든요.

쇼뮤지컬의 본질을 보여준 화려한 무대

브로드웨이 42번가는 1930년대 대공황 시대 뉴욕을 배경으로 합니다. 연출가 줄리안 마쉬가 새로운 쇼 '프리티 레이디'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신인 배우 페기소여가 우여곡절 끝에 주인공으로 발탁된다는 이야기죠. 스토리는 사실 뻔합니다. 오디션에 늦었지만 운 좋게 코러스로 들어가고, 실수로 주연을 다치게 했다가 오히려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되는 전개는 이미 수십 번도 넘게 본 클리셰거든요.

그런데 이 작품은 보드빌(Vaudeville) 전통을 계승한 쇼뮤지컬입니다. 여기서 보드빌이란 19세기 말~20세기 초 미국에서 유행한 버라이어티 쇼 형식으로, 노래·춤·코미디 등 다양한 무대 예술을 한 공연에 집약한 오락 장르를 의미합니다(출처: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브로드웨이 뮤지컬의 기원이 바로 이 보드빌 무대에 있기 때문에, 42번가는 단순히 이야기를 전달하는 게 아니라 관객을 즐겁게 하는 '쇼' 그 자체에 집중합니다.

 

 

뮤지컬 브로드웨이 42번가 커튼콜
뮤지컬 브로드웨이 42번가 후기

최유정, 페기 소여 역할에 완벽한 캐스팅

최유정 배우는 아이돌 출신입니다. 프로듀스101에 출연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솔직히 아이돌이 여주인공을 맡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저는 걱정 반 기대 반이었습니다. 아무리 춤을 잘 춰도 뮤지컬 무대는 또 다른 영역이니까요. 그런데 이번만큼은 제 우려가 기우였습니다.

페기소여는 브로드웨이를 꿈꾸는 신인 배우 캐릭터입니다. 순수하고 패기 넘치지만 아직은 어설픈 면이 있는, 그야말로 풋풋한 신인의 이미지가 필수적이죠. 최유정 배우는 이 캐릭터와 완벽하게 싱크로율이 맞았습니다. 연기 톤이 약간 과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부분이 있었지만, 그게 오히려 신인 배우의 어설픔으로 해석되면서 캐릭터에 생명력을 불어넣더라고요.

특히 피아노 위에서 솔로 탭댄스를 추는 장면은 아직도 생생합니다. 무대 중앙에 놓인 그랜드 피아노 위에서 최유정 배우가 혼자 탭을 밟아대는데, 발끝 하나하나에서 자신감이 뿜어져 나왔어요. 탭댄스는 기술적 완성도도 중요하지만, 리듬을 타는 감각이 더 중요합니다. 여기서 리듬감이란 단순히 박자를 맞추는 게 아니라 음악과 몸이 하나가 되어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능력을 뜻합니다. 최유정 배우는 이 부분에서 탁월했어요.

노래도 작품과 잘 어울렸습니다. 극 전반을 이끌어가는 노련함은 아직 부족하다고 느껴졌지만, 그마저도 신인의 풋풋함이 작품 분위기와 맞물리면서 사랑스럽게 다가왔습니다. 일반적으로 주연 배우는 무게감 있는 연기력이 필수라고 알려져 있지만, 제 경험상 이 작품만큼은 캐릭터와의 싱크로율이 훨씬 중요합니다.

박건형과 전수경, 명암이 갈린 두 연기 그리고 탭댄스

박건형 배우의 줄리안 마쉬는 개인적으로 아쉬웠습니다. 줄리안 마쉬는 극의 중심을 잡는 연출가 캐릭터로, 카리스마와 따뜻함을 동시에 보여줘야 하는 역할이거든요. 그런데 박건형 배우는 뭔가 설렁설렁하는 느낌이 들었어요. 스폿라이트를 받지 못한다고 해야 할까요? 물론 줄리안 마쉬라는 캐릭터 자체가 화려한 쇼를 위해 뒤에서 밀어주는 역할이라 그럴 수밖에 없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박칼린 배우의 젠더프리 캐스팅이 더 궁금해지는 대목이었네요.

반면 전수경 배우의 메기 존스는 정말 대단했습니다. 전수경 배우는 브로드웨이 42번가 한국 초연 때부터 29년간 배역을 바꿔가며 출연해 온 이 작품의 아이콘입니다(출처: 세종문화회관). 메기 존스는 극 중 유쾌함을 담당하는 감초 캐릭터로, 등장하는 매 순간이 코미디 장면들인데 전수경 배우는 백발백중 다 터뜨렸어요.

농익은 연기력과 타이밍 감각이 돋보였습니다. 한 문장, 한 동작마다 관객의 반응을 계산한 듯 정확하게 웃음 포인트를 터뜨리더라고요. 저도 모르게 계속 웃으면서 봤습니다. 무대에 계실 때마다 든든했어요. 역시나 연륜과 노련함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걸 실감했습니다.


제가 직접 본 무대는 시작부터 끝까지 탭댄스 퍼레이드였습니다. 생생한 빅밴드 사운드가 극장을 가득 채우는 가운데, 금빛 의상을 입은 앙상블들이 일제히 탭을 밟아대는 장면은 압권이었어요. VIP석에서 봤는데 배우들의 표정은 물론 탭슈즈가 바닥을 치는 순간의 디테일까지 다 보이더라고요. 일반적으로 뮤지컬은 깊이 있는 서사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는데, 실제로 이 작품을 보고 나니 화려한 군무와 음악만으로도 충분히 관객을 사로잡을 수 있다는 걸 실감했습니다.

앙상블과 빅밴드, 작품을 완성한 숨은 주역들

이 작품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앙상블입니다. 일반적으로 앙상블은 주연을 돋보이게 하는 조연 정도로 생각하는 분들이 많은데, 실제로 42번가를 보면 모든 명장면이 앙상블의 군무로 만들어진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이번 시즌에는 앙상블 인원수가 늘어났다고 하던데, 확실히 장면이 풍성해지더라고요.

특히 군무의 합이 너무 좋았습니다. 앙상블 멤버 전원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모습은 그 자체로 하나의 예술 작품이었어요. 탭댄스는 개인 기량도 중요하지만, 여러 명이 함께 출 때는 싱크로율(Synchronization Rate)이 생명입니다. 여기서 싱크로율이란 여러 배우가 동시에 같은 동작을 할 때 타이밍과 강약이 얼마나 일치하는지를 나타내는 지표입니다. 이번 공연의 앙상블은 이 싱크로율이 거의 완벽에 가까웠어요.

그리고 빅밴드 사운드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생생한 라이브 연주가 극장 전체를 채우는데, 이게 단순히 배경음악이 아니라 공연의 또 다른 주인공 역할을 합니다. 드럼·트럼펫·색소폰 등 여러 악기가 어우러지는 빅밴드 특유의 웅장하고 화려한 사운드는 1930년대 뉴욕의 분위기를 생생하게 재현했습니다.

VIP석에서 보니 무대 뒤편의 오케스트라 피트까지 보이더라고요. 연주자들의 열정 넘치는 모습까지 감상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약 160분(인터미션 20분 포함)의 러닝타임 내내 눈도 귀도 호강하는 경험이었어요. 전혀 지루함 없이 극에 완전히 몰입해서 봤습니다.

브로드웨이 42번가는 깊이 있는 서사나 감동적인 메시지를 기대하고 보는 작품은 아닙니다. 그저 화려한 쇼 한 편을 즐기고 싶을 때, 아무 생각 없이 신나는 탭댄스와 음악에 몸을 맡기고 싶을 때 선택하기 좋은 뮤지컬이에요. 다만 샤롯데시어터는 주차가 복잡하니 대중교통을 추천드립니다. 특히 공연 끝나고 출차할 때 매우 혼잡하니 미리 참고하세요. 지금은 극이 막을 내렸지만, 언젠가 매연을 하게 된다면 주저 없이 예매하시길 권합니다. 특히 최유정 배우가 또 캐스팅된다면, 꼭 최유정 캐스팅으로 관극 해 보시면 좋겠어요.  아이돌 출신이라는 편견을 완전히 깨버린 무대였으니까요.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OWVKdnXQW-8&t=113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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